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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3 ~ 2018. 10. 26
New York
Day 5.
지루하다.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붙잡아도 맘편히 풀리는 적이 없고 이미 박혀버린 사람에 대한 인상은 바뀔 줄을 모른다. 그래도 Eddie Higgins의 Autumn Leaves를 들으니 여행기를 시작할 만큼은 흥이 나는 것 같다. 이래서 음악이 좋은거지.
뉴욕의 다섯번째 날은 갤러리를 두개나 가고 카네기홀에서 음악까지 들은 날이었다. 아름답기 그지 없는 날! 카네기홀 공연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했다. 음향이 좋은 곳에서 클래식을 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잘 모르는 자리 고민까지 해가며 예약하고 갔는데 역시나 음향은 최고였다. 하루종일 갤러리를 돌아다니느라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들었다는 점이 아직도 아쉽다. 뉴욕에 도착한 이후로 매일 25,000보 이상을 걸어서 발이 적응하느라 물집을 달고 다녔던 때기도 하고.
아직 시차적응을 하던 때라 새벽이면 눈이 떠졌다. 내키는 날이면 강변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도 했다. 길의 끝에는 항상 스타벅스! 뉴욕 이전의 여행은 까마득해서 스스로의 여행 스타일이 어떤지 잘 모르는데, 확실히 여행 간다고 책을 네 권이나 챙겨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건축과 뉴욕 미술에 대한 책을 잔뜩 빌려왔기 때문에 이렇게 새벽에라도 종종 읽어야 했다. 비행기에서는 어쩐지 책에 손이 잘 가질 않아서. 평소에 카페에 거의 가지 않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데에 익숙치 않은데 뉴욕에서는 이상하게 이렇게 꼭 모닝 스벅타임을 가지고 싶었다.
한국 스타벅스에서는 먹을수 없는 클래식 커피케익.
동행은 단 맛이 너무 강해 싫다고 했지만 나는 단걸 좋아하기 때문에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는 커피케익. 한국에서는 생크림 카스테라를 즐겨먹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먹지 않고 있다. 생크림 카스테라는 이마트에서 사먹는게 더 저렴한데 이마트에서 요즘 찾아보기가 어려워서. 여하튼 데워달라고 해서 라떼와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유명한 맛집에도 좀 다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들러본 머레이스 베이글. 맛있었다.
휘트니 미술관 가는 길.
청명한 겨울날의 하늘을 좋아한다. 물론 10월의 뉴욕은 가을이었지만... 코가 시리게 추웠기 때문에 겨울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여름과는 다른 색의 파랑을 짙게 비추는 쨍한 햇빛. 어떤 기억들은 공들여 찍은 사진과 같이 남는다. 내게는 추운 계절의 장면들이 대체로 그렇다. 가장 살아있다 느끼는 건 여름이면서 내내 겨울을 그리워한다. 아름다운 추위의 기억을 남기기에 딱 알맞았던 10월의 뉴욕.
커다란 식물!
짠!
아쉽게도 앤디 워홀 전시는 내가 뉴욕을 떠나고 한참 뒤인 11월 12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앤디 워홀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궁금하고 흥미로울수밖에 없는 작가니까. 휘트니 미술관은 10시부터 오픈이라 일찌감치 길을 나선 우리는 근처를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워야만 했다. 하이라인을 조금이라도 구경할 계획이었으나 허드슨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성질이 나서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끌리지가 않더라니 ... 하이라인을 제대로 못 봤다는 아쉬움은 지금도 전혀 없다.
휘트니 미술관.
예전의 휘트니 미술관은 다른 건물이었고 지금 건물이 새로 지은 건물이라던데 찾아보기는 귀찮네. 너무 추워서 그랬는지 건물 전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맞은편 건물 벽에도 휘트니 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의 일부로 작품이 걸려있었다.
이 날의 착장. 블런스톤 부츠는 걷기에 편하다.
휘트니 미술관에 왔으면 테라스에 반드시 가봐야 한다. 날이 좋아 더욱 예뻤던 풍경.
오른쪽의 원통형 기둥 때문에 더욱 회화적으로 보이는 사진이다. 직선과 평면이 빛을 만났을때 생기는 또다른 선과 면을 좋아하기에 이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찍고 나서는 왠지 몇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건 아무래도 고독 때문일거다. 에드워드 호퍼가 생각나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
에드워드 호퍼는 사람들이 좋다 좋다 할때는 거들떠도 안 보다가 휘트니에서 만난 몇 점의 작품들로 어느 정도 항복해버렸다. 젊은 작가려니 짐작했는데 1930년대에 활동했다는 점이 의외였다. 결국 에드워드 호퍼의 엽서세트를 사버렸다. 외로움의 단맛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글을 써서 줘야지.
알렉산더 칼더의 닭벼슬(Cock's Comb). 위치 때문인지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옥상 카페에서의 전경.
점선면과 색상... 너무 좋다.
요제프 알베르스의 그림들. 요즘 이런 그림들이 좋다.
3개 층에서 풍부한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던 휘트니 미술관. 나중에 디아 비컨에서도 보게 될 마리 코스의 작품도 봤다. 나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뮤지엄 산을 기억했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노을과 함께 감상하는 프로그램이 뉴욕에도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서 아쉽다. 물론 한국에서도 볼 수 있지만 차가 필요해서 편하게 보긴 어려우니까.
나중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선명하게 느낀 건데, 나는 현대미술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추상회화를 아주 좋아한다. 모던 회화 중에서는 유화를 그나마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모네의 작품을 제일 좋아하는 일관성 있는 취향. 이해할 필요가 없거나 이해하기 쉬워서 좋아하는게 아닐까 싶다. 사실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더 푹 젖을 필요가 있다.
휘트니 관람을 끝내고 모마로 향하는 길.
모마 투어 전에 센트럴파크 들러서 룩스랍스터 먹었다. 센팍과의 짧은 첫만남.
오후에는 모마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규모가 큰 미술관은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왔다. 결과적으로 대만족! 모마는 정말 컸고 작품들도 너무 좋아서 다시 오고 싶었지만 아울렛 쇼핑 때문에 재방문 계획은 밀려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아쉽다. 아쉬워.... 역시 또 가야겠어.
모두가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상이 무엇이든 세간의 평가에는 대체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지만, 고흐에 대한 반응에는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직접 봤다면 더더욱. 고집스럽게 쌓아올려 겹겹이 층을 이룬 물감들과 그 위를 스쳐간 붓질이 만들어낸 역동적인 장면들은 확실히 마음을 울린다. 스스로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구나, 느껴질 때 전에 말했던 작가와 이어지는 기분이 된다. 물론 고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여
설명 들으며 작품 보느라 사진 찍을 시간도 많지 않았다. 이건 누구 작품이었는지도 못 봤는데 이걸로 만든 브로치 있었으면 샀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없어서 모마 디자인 스토어에도 들르지 못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다녔는지 모를 일이다.
모마 정원 가는 길의 장미.
저녁 일정은 카네기홀에서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 보기. 너무 피곤해서 많이 졸았지만 음향이 정말 좋았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연주자들의 섬세한 터치가 너무나도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들려서 현에 깃털이 스쳐도 그 움직임을 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의 여느 문화시설이 그렇듯 노인 관객이 많았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도 배워야 한다.
공연장 뒤에서 찍은 파노라마 샷
공연장 앞에서 찍은 파노라마 샷.
카네기홀 전경. 나중에 방문한 링컨센터보다는 작은 규모다.
뉴욕에서 클래식 공연은 두 번 들었는데, 카네기홀에서 본 공연이 나중에 링컨센터에서 본 뉴욕 필하모닉 공연보다 좋았다. 음향이야 둘다 선명하고 좋았지만 뉴욕 필은 생소한 방식의 공연이기도 했고 함께 보여준 영상 자체도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인상깊게 남은 카네기홀 공연. Parquet석 중에서도 뒤쪽 열이 지휘자와 높이가 비슷해 음향이 좋다고 하니 혹시나 이 글을 보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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